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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해방기 국악원의 정치적?문화적 지향성 변화
A Study on Changes in Political and Cultural Orientation of Gugak Center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판소리학회
백현미
논문정보
- Publisher
- 판소리연구
- Issue Date
- 2022-04-30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1
- Number
- 53
- Start Page
- 163
- End Page
- 216
- DOI
- ISSN
- 15983552
Abstract
국악원은 해방 직후 남한에서 창립된 전통예술계의 대표 조직으로, 해방기의 정치적 혼란과 문화적 갈등에 연루된 상태로 존재했다. 본고는 국악원의 활동을 세 시기로 나눠, 국악원이 주최하거나 참여한 공연 및 행사의 정체성과 정치적?문화적 지향성을 밝혔다.
설립기(1945.8-1946.1)에 ‘국악’과 ‘가극’이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국악원 강령에서 ‘국악’은 ‘민속악과 아악을 물론한 악’으로 개념화되었다. 국악원의 창립 공연 <춘향전>은 아악계 악사들의 기악 연주와 춤 그리고 조선고전음악연구회 회원들의 창악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었고, ‘가극’으로 홍보되었다. 첫 번째 전환기(1946.2~1947.8), 국악원은 민속악 중심 조직으로 개편되었고, 문련 산하 단체로서 좌익계와 연결된 문화행사에 참여했다. 이 즈음 창악인들의 창극은 국극으로 호명되었고, 국악원은 전국 단위의 농악대회를 주최했다. 두 번째 전환기(1947.8~1950.6), 국악원은 정부의 후원을 받는 무대예술원 및 문총과 연계되어 활동했고, 국가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창극을 ‘민족오페라’라고 홍보했고, 전국 단위의 민요대회를 개최했고, 국악무대예술가자격심사를 실시했다.
본 연구를 통해 ‘국악’의 개념 형성과, 국악원을 매개로 한 아악과 민속악의 통합 시도와 갈등 그리고 분리 상황을 확인했다. 또한 원장 교체기를 전후해, 국악원의 정치적 색채가 좌익계에서 우익계로 변화했음을 확인했다. 국악원이 주최한 창극 공연은 가극으로, 국극으로, 그리고 민족오페라로 불렸다. 가극이라는 명칭이 음악극으로서의 변별성을 강조했다면, 국극이나 민족오페라라는 명칭은 해방기야말로 예술의 정치화 시대임을 강력하게 드러내었다.
- 전남대학교
- KCI
- 판소리연구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백현미 | 국어국문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