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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혁명기 러시아의 음주문화와 만취폭동
호남사학회
박상철
논문정보
- Publisher
- 역사학연구
- Issue Date
- 2023-11-30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92
- Number
- -
- Start Page
- 269
- End Page
- 305
- DOI
- ISSN
- 19752431
Abstract
1917년 혁명기에 ‘자유’는 새로운 러시아의 중요한 가치로 선포되었다. 대중들은 그런 자유의 개념에는 마음대로 술을 마시거나 제조할 자유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면, 임시정부는 혁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존 금주법을 유지, 강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런 상반된 입장은 기존 금주법에 대한 해석 차이와 관련되어 있었다.
우선 자유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보드카 국가독점 제도가 오히려 만취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정부, 특히 재무부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음주-만취와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나아가 급진적인 금주 운동 세력은 민중들의 자제력, 즉 독자적인 판단 능력과 자율적인 행위 능력을 불신했기 때문에 민중들이 ‘국민적 재앙’인 만취에서 벗어나도록 주류 판매를 완전히 금지할 것을 주장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전쟁 기간에 도입된 금주법 체제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강화 및 영구화를 추진하였고, 2월 혁명 이후 이들이 주도한 임시정부는 기존 금주법 체제를 계승-확대하였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많은 사회주의자와 이른바 ‘의식 있는’ 노동자와 병사들도 임시정부의 이런 입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보드카 중심의 음주문화는 많은 러시아인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고, 러시아 민중들은 금주법을 2월 혁명으로 폐위된 니콜라이 2세 탓으로 돌렸다. 따라서 러시아 민중들은 2월 혁명으로, 빼앗긴 음주-만취의 자유를, 즉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다고 생각했고, 임시정부의 금주법을 그런 자유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이곤 하였다. 나아가 러시아의 ‘술꾼들’은 다양한 논리로 음주-만취의 자유가 새로운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이자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오랜 음주습관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였다.
1917년 혁명기 만취폭동은 음주-만취의 자유와 권리를 당연시했던 당시 러시아 대중들의 음주문화 속에서 일어났다. 물론 만취폭동은 1917년 혁명 이전에 여러 차례 일어났고, 1917년 혁명기에도 초기부터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1917년 여름부터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갈등이 점점 더 악화되면서 더욱 빠르게 확산하였으며, 10월혁명 직후에 절정에 도달한 후 비축 주류가 모두 약탈당하거나 폐기된 1918년 여름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만취폭동들은 여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과 결부되어 혁명적 대중운동의 모습을 띠기도 하였다. 특히 ‘투기꾼’ 또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은 만취폭동의 원인 또는 배경으로서 중요했는데, 많은 사람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자본가’, ‘부르주아지’, 또는 다른 특권세력들의 악의적인 행위 탓으로 돌리면서 대중들의 분노와 적대감은 만취폭동 때에 쉽게 표출...
- 전남대학교
- KCI
- 역사학연구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박상철 | 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