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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고려시대 도선과 묘청의 ‘풍수론적 국토관’ 검토
호남사학회
김병인
논문정보
- Publisher
- 역사학연구
- Issue Date
- 2023-11-30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
- Number
- 92
- Start Page
- 67
- End Page
- 104
- DOI
- ISSN
- 19752431
Abstract
신라의 난생설화에 등장하는 첫 번째 신성공간은 고허촌의 나정 옆 숲속이다. 이후 선덕여왕 때 낭산의 ‘신유림’이 새로운 신성공간으로 등장한다. 불교가 들어온 다음에는 이곳이 절터로 바뀐다. 즉, 천손신앙의 배경이 된 곳이 국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불교 수용 이후에는 사찰이 이곳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신라 말기에 접어들어서 절터가 왕릉의 명당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신라 국토관의 특징은 ‘하나의 공간’이 ‘다양한 성격’으로 변화 전이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고려가 건국되면서 신라의 멸망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천손국가인 신라가 망하게 된 원인은 하늘의 응징에서 찾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선에 의하여 ‘신라는 지덕이 쇠한 까닭에 망했다’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였다. 도선이 고려 국토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을 ‘신이 노니는 곳’에서 지덕론에 입각한 ‘명당’으로 대체시켰기 때문이다.
고려 중기에 이르기까지 도선의 논리에 따라 몇 차례 천도가 거론되다가 인종대에 이르러 묘청이 지세론을 들어 ‘대화세’가 가장 좋은 서경천도를 주장하였다. 묘청은 서경으로 천도하면 주변 36개국이 찾아와 항복할 것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도선이 왕조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명당을 찾았다면, 묘청은 보다 진전된 천하관을 주장한 것이다. 이는 도선의 풍수론적 국토관의 범위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도선과 묘청의 풍수론적 국토관은 경주의 특정 지역에 고정된 국토관에서 벗어나, 보다 확장된 범위 내에서 지덕과 지세에 따라 이동이 가능하고, 그로 인해 고려 국가 경영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전남대학교
- KCI
- 역사학연구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김병인 | 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