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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몽골제국 大都의 탄생과 발전 - “사람과 말의 궁정(人馬之宮)”, 그리고 不在의 권력 -
역사교육연구회
설배환
논문정보
- Publisher
- 역사교육
- Issue Date
- 2022-09-30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1
- Number
- 163
- Start Page
- 109
- End Page
- 164
- ISSN
- 12250570
Abstract
본고는 兩京之制 아래에서 大都, 곧 칸발릭(Khanbaliq)의 역사상과 개방성을 분석했다. 몽골인의 계절 이동 풍속은 쿠빌라이 카안의 상도와 대도, 곧 여름과겨울 수도를 탄생시켰다. 두 수도는 몽골제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을 카라코룸에서 兩都로 옮겼다.
대도는 정치·경제·문화·생태에서 반드시 상도와 동일한 지위나 역할에 있지않았다. 하영지 상도가 몽골의 전통과 유산을 기억, 재현하는 여름 쿠릴타이의 장소로서 몽골인에게 중요했던 반면, 동영지 대도에서의 조회는 한자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중시되었다. 이들의 관점은 행정적 관점의 양도론이나 몽골 시각의 상도중심론을 외면하며 대도 “定都”論을 강화했다.
양도 관계에서 “京師” 혹은 “帝都”로서 대도(칸발릭)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논자의 인식과 달리, 대도는 상도의 최대 물자공급지였다. 상도의 물자는 연경 帑藏을그대로 옮겨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도는 몽골 황실의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겨울에 諸王 등에게 쿠릴타이 금·은·?·金段을 하사하는 歲例賜與의 장소로 기능했다. 아유바르와다 카안 등 일부 군주는 대도에서 즉위했다. 대칸의 상도 순행은 대도에서 留守 재상과 관원의 巡山과 巡倉이라는 새로운 여름 문화―“대도에서 여름 나기”[大都住夏; 京都住夏]―를 창조했다. 여름 대도는 ‘상도의 거울’이라 칭할 만하다.
대도의 지리와 역사는 주례 ?고공기?의 도성 모델로 온전히 설명되지 못한다. 대도 지리의 중심은 황궁이 아닌, 中心臺와 鼓樓였다. 대도성과 그 구조물은몽골·‘중국’·이슬람 등의 복합 설계와 다원적 구성의 산물이었다. 대칸은 황궁에거의 머물지 않았다. 황궁과 대도성에서 대칸의 부재는 계절 순행과 쿠릴타이, 사냥 등 스포츠를 즐기는 유목 전통인 동시에, 대도를 잠재적 반란과 불신의 장소로간주한 대칸의 주술적·정치적 의식에서 기인했다. 카안은 반란을 불식하고자 재산이 많고 관직을 보유한 이를 新城의 이주민으로 우선 선발했고 행정기구와 군사조직과 법령으로 신민을 통제했다.
카안의 부재는 여름 대도를 유수와 종교인, 상인이 연출하는 경제와 문화의 장소로 만들었다. 매년 가을 신민은 대도로 귀환하는 대칸을 환영했다. 대칸을 향한 신민의 순응과 환호는 장관(splendor)의 정치·의례 행위이자, 경제적 기대였다. 대칸의 부재와 귀환이 대도 주민의 일상과 경제 질서를 가동하는 시계추였던 한편, 신민의 환호는 대도성 밖 이동 군주에게 권력을 확신시켰다. 한인 지식인은 대칸의 부재에서 “무위의 정치”를 발견했다. 대칸의 “부재의 정치(politics of absence)”와 경제는 유연한 개방적 권력과 초원 전통의 소산이었다.
요컨대 양도 체제에서...
- 전남대학교
- KCI
- 역사교육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설배환 | 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