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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일본군 기록으로 본 울산성 전투와전투 직후 일본군의 동향
한일관계사학회
김경태
논문정보
- Publisher
- 한일관계사연구
- Issue Date
- 2024-08-3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
- Number
- 85
- Start Page
- 225
- End Page
- 266
- ISSN
- 12293687
Abstract
울산성 전투는 정유재란 시기 가장 규모가 큰 전투 중 하나였다. 명과 조선의 연합군이 가토 기요마사의 울산성을 포위 공격한 이 전투는 열흘 이상 이어졌으나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공략에 실패한 명군 지휘부는 처벌을 받았다. 일본군은 비록 방어에는 성공했으나, 전투 후의 소극적인 자세를 두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질책을 받았다. 울산성 전투가 가지고 온 정치적 갈등은 각국의 정치 구도에 한동안 영향을 미쳤다.
본 연구에서는 위와 같은 전투의 여파를 염두에 두면서, 울산성 안에서 직접 전투에 임했던 일본군의 기록을 통해 전투의 실상에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다. 일본군은 명과 조선 연합군의 갑작스런 공격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포위에 갇혀 식량과 물이 고갈된 일본군은 고통과 공포에 시달렸다. 명군?조선군이 공성을 포기하고 물러났으나, 성안의 일본군은 물론, 구원군도 추격전을 포기했다. 양측에게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전투였다. 한편 전투 현장의 공포보다 일본군을 더욱 두렵게 한 존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전투 직후, 그들은 전투 과정의 실패와 실수를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전선축소 건의가 히데요시의 분노를 불러온 후에는, 대부분 그의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끝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묵묵히 수행하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이들은 시대와 장소를 떠나 모두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 따라 자연스러운 감정을 넘어선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도망이라는 적극적인 저항을 택했던 일부를 제외하고 왜 대부분의 일본군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르기만 했을까. 또 어떤 이는 왜 잔혹한 폭력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고 자랑스럽게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을까. 이를 해명하는 과정을 통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참모습을 밝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전남대학교
- KCI
- 한일관계사연구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김경태 | 역사교육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