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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麗末 鮮初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과 그 의미
The aspects of the creation of Sijo by naturalized poets from the late Goryeo Dynasty to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its meaning
한국시가문화학회
조지형
논문정보
- Publisher
- 한국시가문화연구
- Issue Date
- 2021-08-3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1
- Number
- 48
- Start Page
- 5
- End Page
- 31
- DOI
- ISSN
- 24661759
Abstract
본고는 여말 선초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여말 선초는 시조의 형성기로서 역사 전환기의 주체였던 신흥사대부들이 그 담당층이었다. 이 같은 국면에서 귀화인들 역시 시조를 창작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및 지향을 시조를 통해 드러내었다. 우리말에 서툴 수밖에 없던 귀화인들이 우리 고유의 노래 형식인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심양 출신으로 공민왕을 호종하며 귀화한 변안열은 역성혁명의 기로에서 <불굴가>를 지어 무장으로서의 굳건한 충절을 드러내었다. 위구르 출신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로 귀화한 설장수는 대명외교를 전담하는 사신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부침 속에서 <신언가>를 지어 언행 처신에 조심할 것을 경계하였다. 여진 출신으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왕족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지란은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왕위의 향방과 조선의 운명에 대한 염려 섞인 걱정을 <축록가>를 통해 드러내었다.
이처럼 여말 선초에 귀화인을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 한시와 더불어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점은 여말 선초 사대부들의 문학장 안에서 시조가 중요한 문학적 행위의 일환으로 인식되었으며 작가로서 일종의 긍지를 가질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조 창작의 개방성은 이미 형성기부터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 전남대학교
- KCI
- 한국시가문화연구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조지형 | 국어교육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