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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고대음악사 서술의 제 문제 -??삼국사기?? 인물 해석과 악기 서술을 중심으로-
한국국악학회
이용식
논문정보
Publisher
한국음악연구
Issue Date
2022-06-30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71
Number
0
Start Page
91
End Page
112
DOI
ISSN
19754604
Abstract
한국음악사에서 고대음악사 서술은 전적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존한다. 기존의 고대음악사 연구가 실증주의적 시각에 입각하여 문헌 기록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가의 사관에 의해 걸러진 역사이다. 그렇기에 고대 음악에 관한 문헌기록은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삼국사기??는 김부식 등의 유학자들이 철저히 유학적 시각에서 신라중심적으로 쓴 역사이다. 그렇기에 ??삼국사기??는 오랫동안 학계의 논쟁을 통하여 그 기록적 가치가 평가되어왔다. 이글에서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음악인을 중심으로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하는 고대음악사 서술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거문고를 창제한 것으로 기록된 왕산악은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고구려 귀족의 성씨 중에 왕씨가 없고,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제2상’이라는 모호한 관직명을 기록했다. 더욱이 왕산악과 관련된 ‘현학래무’ 설화는 중국 금과 관련된 ‘탄금무학’과 ‘봉황래의’ 설화의 고구려 버전이다. 왕산악이 만든 거문고는 고구려 이전부터 존재했던 악기였을 것이다. 이를 중국의 칠현금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왕산악 창제설은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유학적 시각의 반영이다. 우륵은 고구려 계통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고구려에는 우씨 왕비가 있고, 우씨는 상당한 권력을 가진 집안이었다. 고구려와 가야가 연맹을 맺은 4~5세기 무렵 고구려의 우씨 중에 가야에 정착한 후손이 우륵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진흥왕은 우륵을 고구려 유민이 많은 국원에 안치하는 정치적 고려를 했을 것이다. 음악인 중에서 유일하게 ?열전?에 기록된 백결선생의 본명은 박문량으로 박혁거세의 후손이다. 그는 5세기 경주의 인물이기에 그가 <대악>을 연주했던 금은 거문고로 해석하기 어렵고 오히려 신라금으로 해석해야 한다. 결국, ??삼국사기??에 기록된 음악인들에 대한 재해석이 있어야 ??삼국사기??를 통한 음악적 재해석이 가능하다.

저자 정보

이름 소속
이용식 국악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