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22
1920년대 후반 『조선일보』 평원지국의 구성과 활동 - 사회단체로서 언론사 지방지국의 위상과 역할 -
The Composition and Activities of the 『Chosun Ilbo』 Pyeongwon Branch in the Late 1920s - The Status and Role of Local Branch of Media Companies as a Social Organization -
역사문물연구소
한규무
논문정보
- Publisher
- 숭실사학
- Issue Date
- 2022-12-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Number
- 49
- Start Page
- 121
- End Page
- 146
- DOI
- ISSN
- 2005-9701
Abstract
『조선일보』 평원지국은 1925년 2월경 영유면에 설치되었다. 초대 지국장 송계은을 비롯한 임직원은 각종 사회단체 창립을 주도한 인물들이었으며, 1925년 상반기 평원지국 및 ‘사상단체’로 불린 평원ㄱㄴ회와 사상운동사 평원지국은 서로 밀접한 관계였다. 1925년 4월경 총무로 채용된 이관용 등은 김원근 평원지국 직원들과 함께 소년척후대와 평원체육회를 창립하고 사상운동사 평원지국이 주최하는 양서축구대회를 후원했다. 『조선일보』 평원지국과 평원체육회·평원ㄱㄴ회 등이함께 후원했다. 경찰은 1925년 9월부터 소년척후대를 문제삼아 지국장 이관용과 기자 김원근을 구금했고, 11 월에는 평양지국 주최 평원학생 현상작문대회를 금지시켰다. 이후 평원지국의 활동도 위축되었다. 이듬해인 1926년 6월경 김달요가 지국장을 맡은 직후 『조선일보』에는 허시모사건이 대서특필되며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경찰 출신인 김달요는 이 사건을 직접 취재했는데 사전에 평원경찰서와 정보 공유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그는 평원협성회 결성에 참여하고 평원기자단에서 활동하며 1929년 5월까지 지국장으로 재직했다. 허시모사건 이후 영유면을 중심으로 한 평원군의 사회단체는 침체의 늪에 빠졌으며 평원지국의사회운동도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1928년 1월 개최 예정이던 신간회 평원지회 설립대회도 내부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사상단체’라 불린 평원ㄱㄴ회와 사상운동사 평원지국도 1929년경 해산된 것으로 여겨진다. 평원지역 사회운동의 침체 원인을 『조선일보』 평원지국의 사정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송계은과 이관용이 지국장이던 시기 활발했던 평원지국의 활동이 김원근 지국장을 거쳐경찰 출신인 김달요 지국장 이후 확연히 침체되는 현상은 평원지국의 임직원 구성과 활동이 평원지역 사회운동 전반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이같은 점에서 『조선일보』 평원지국은 지역 사회단체들의 거점이자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단체였다고 할 수 있다.
- 광주대학교
- KCI
- 숭실사학
저자 정보
| 이름 | 소속 | ||
|---|---|---|---|
| 등록된 데이터가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