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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담양 義巖書院의 설립, 사액 그리고 철폐 A Study on EuAhm Seowon in Damyang County
호남사학회
논문정보
Publisher
역사학연구
Issue Date
2015-02-28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57
Number
1
Start Page
103
End Page
134
DOI
ISSN
19752431
Abstract
유희춘을 모시는 三川祠는 담양의 양반사림 58명이 앞장서고, 전라도 양반사림의 호응과 지방관들의 도움을 얻어 1610년경에 완성되었다. 삼천사는 1630년경에 향교 근처로 옮기고 白川祠라 이름을 바꾸었다. 옮긴 이유는 유희춘이 文節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과 관련 있어 보인다. 1668년에 담양 양반사림들이 사액을 받고자 상소문을 제출하여, 1669년에 ?義巖?이라는 사액 이름을 받았다. 의암서원은 사액을 받은 뒤 나라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다. 제례에 쓸 祭需와 각종 잡물을 관아로부터 지급 받았다. 토지 3결을 면세받았고, 노비도 한때 100여명 이상을 소유하였다. 액외원생(정액 이외의 원생)을 수령으로부터 허락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관에서 보태준 식리전은 재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서원이 문중서원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유희춘 후손들이 원임을 담당하고 의암서원 운영에 깊이 간여하였다. 의암서원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하여 관에 적극적으로 밀착하였다. 수령에게 원장을 맡기고, 19세기에 들어서면 경원장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후원을 얻어 많은 건물들을 수리하고 건립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면 대부분의 서원은 교육기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의암서원도 마찬가지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의암서원도 1871년에 철폐되었다. 호남의 유생들은 1884년에 유희춘의 문묘 배향을 요청하는 상소를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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