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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일제강점기 전남 광주의 소방조 창설과 화재
The Establishment of the Fire Fighting Service and Fires in Gwangju, Jeonnam during the Japanese Rule
역사문물연구소
이성우, 한규무
논문정보
- Publisher
- 숭실사학
- Issue Date
- 2019-12-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Number
- 43
- Start Page
- 173
- End Page
- 205
- ISSN
- 2005-9701
Abstract
1907년 일본인들이 사설의용소방대를 조직한 것이 광주지역 근대적 소방기구의 시초이며, 이 소방대를 모태로 하여 1911년 소방조가 창설되었다. 소방조는 처음 광주재향군인에서 관리하다가 1914년 업무가 광주위생소방조합으로 이관되었으며, 1917년 다시 광주면으로 인계되었다. 이로써 광주소방조는 광주경찰서와 광주면·읍 등 기관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조두·부조두·소두 등 소방조의 간부는 민간인 유지들이었으며 조원 역시 대부분 다른 생업에 종사했다. 소방조는 규칙에 따라 경찰의 지휘를 받으며 하부조직·보조조직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3·1운동이나 광주학생운동 때는 시위진압에 동원되었고, 수해예방과 인명구조를 위해서도 자주 출동했다. 1935년 수방단이 별도로 조직되었지만 소방조원이 수방단원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일제는 전시체제가 강화되는 1937년 소방조와 수방단을 경방단으로 통합했으며, 광주에서는 1939년 경방단이 창설되었다. 광주지역의 화재는 1930년대 들어오면서 격증하여 “화신의 저주밧는 최근 광주”·“4·5年래에 불잘나기로 유명하게 된 光州邑內(1934)”와 같은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발화원인으로는 실화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이 시기에 들어오면 원한이나 치정, 보험금 등을 이유로 한 방화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겨울보다는 봄에 화재발생 빈도가 높았고, 발생원인은 부주의로 인한 실화가 대부분이었으며, 발생장소는 주택과 상가가 많았다. 인명피해는 사망 6명과 부상 14명 정도가 확인된다. 대표적 화재사건으로는 광주청년회관 화재(1925.12), 광주군청 화재(1931.09), 전남도시제사주식회사 화재(1933.01), 광주제중원 화재(1933.10), 광주공립보통학교 화재(1933.12)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회관·관청·공장·병원·학교 등 기관이어서 피해정도와 함께 지역에 끼친 영향도 컸다.
- 광주대학교
- KCI
- 숭실사학
저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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