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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朝鮮時期 麗水의 石堡와 石(堡)倉 Yeosu’s Stone Fortress(石堡) and Storage of a Stone Fortress(石倉) in the Choseon dynasty
호남사학회
논문정보
Publisher
역사학연구
Issue Date
2008-06-30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1
Number
33
Start Page
57
End Page
89
DOI
ISSN
19752431
Abstract
조선전기 麗水에 石堡라 불리는 소규모의 석축 보루가 있었다. 현재의 石倉城址가 그곳인데, 그 선구적인 존재가 여수 木柵塗泥城이었다. 조선초 태종 15년(1415) 이전 아마도 태조가 즉위하던 즈음 축조된 이 목책도니성은, 처음 여수현의 治所였다. 그랬다가 여수가 순천으로 통합된 후에는 왜구 방어시설로만 사용되었으며, 석창성지 인근의 봉계동토성이 곧 그곳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수 석보는 세종 27년(1445) 무렵 처음 그 축조가 결정되었으며, 문종 2년(단종 즉위, 1452)의 구체적 추진을 계기로 세조 3년(1457) 이전 언젠가 완성되었다. 퇴락한 목책도니성을 대신할 새로운 왜구 방어시설로서였다. 이 석축의 보루가 석창성지에 들어선 것은, 바다 가까이에 위치한 데다 그 일원이 옛 여수현의 치소로서 인구가 밀집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여수 석보는 兵馬使 휘하의 陸軍에 속한 關防이었다. 여수 석보는 중종 17년(1522)에 혁파되고, 그 군병은 이웃의 돌산진으로 옮겨갔다. 지역방어의 중심이 全羅左水營과 防踏鎭을 축으로 재편된 데 따른 조치였다. 이후 16세기 중반 즈음 석보는 還穀을 관리하는 창고시설로 전용되었다. 명칭마저 석(보)창으로 바뀐 이 석축구조물은, 조선말 환곡제가 폐지되면서 그 공적인 시설로서의 운명을 마감하였다. 석(보)창 일대에는 거주인구와 유동인구가 상당하였다. 17세기 초반 즈음 벌써 場市가 개설될 정도였다. 순천과 여수지역을 통틀어 최초로 개설된 3곳 중의 하나였던 이 장시는, 전라도 동부지역에서 평균적인 규모의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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