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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유교비판과 한계
Fukujawa Yukichi’s Critics of Confucianism and Its Limitations
인문사회 21
이희재
논문정보
- Publisher
- 인문사회 21
- Issue Date
- 2016-12-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7
- Number
- 6
- Start Page
- 177
- End Page
- 193
- ISSN
- 2951-049X
Abstract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4-1901)에 의하면 아시아의 정체는 유교의 폐쇄성에 있다고 보았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문명의 핵심을 유교로 인식한 그는 국민의 기풍이 자유롭게 문명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에는 그 유교가 자리잡고 있다고 파악한다. 서양문명과 서양의 실력을 무시하고 과거에 집착하고 낡은 신분관계에 얽매인 유교적 사상은 서양의 새로운 문화를 배타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비판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그의 유교비판은 첫째 유교의 남존여비(男尊女卑) 등의 차별성이다. 위 아래의 신분을 정하고 그 신분에 맞게 순응하여 살게 했는데, 자연스럽게 권위에 대해 맹종하고 비굴하고 당당하지 못한 개인들을 만들었다고 본다. 둘째의 폐습은 개인의 자주성과 독립성의 결여이다. 윗사람을 보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일본인들의 습관도 그러한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유교적 폐습에 속한다. 셋째로는 신분제의 비판이다. 후쿠자와가 살았던 19세기말의 일본은 여전히 지위, 성별, 연령에 따른 본분을 강조하는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였다. 신분은 관습상 세습적인 것이었고, 봉건적 막번(幕藩) 체제가 유교에 의해서 떠받혀 있었다. 자신은 노모를 잘 모시는 효자였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효도의 강요는 위 아래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국 신분제의 강화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의 유교관은 단순히 유교의 문제점을 오륜(五倫)이나 삼종지도(三從之道) 등으로 피지배자를 순종시키려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수신의 바탕이자 일본사회의 주요한 가치인 修身齊家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일본은 천황제 존립을 위한 공교육을 강화하면서 官尊民卑의 형태로 계승되어온 전통적인 관료주의가 오히려 강화되었기 때문에 그의 영향 역시 한계가 있었다. 그의 유교비판이 한국의 개화와 개화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는 차후의 과제로 삼겠다.
- 광주대학교
- KCI
- 인문사회 21
저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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