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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일제의 벽제관 전적지 개발과 활용
A Study on the Development and Utilization of Byeokjegwan Battle Site by the Ruling Japanese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규무
논문정보
- Publisher
- 한국근현대사연구
- Issue Date
- 2016-09-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Number
- 78
- Start Page
- 115
- End Page
- 136
- DOI
- ISSN
- 1227-8203
Abstract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고양군 벽제관의 개발과 활용을 시국의 변화와 연계하여 살펴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승전지인 벽제관은 일제에게 매우 소중하고 유용한 고적이었다. 그 때문에 일찍부터 통감부와 총독부 관리들의 시찰과 군인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특히 일제의 고적조사 및 보존사업과 연계되어 1911년 벽제관보존회가 조직되었으며, 1915년 시정5주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앞두고 벽제관 고적보존회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벽제관 일대도로 및교통 시설이 확충되고 시장과 금융조합이 신설되며 녹화사업이 전개되는 등 개발이 추진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 직전 전적기념비건설기성회가 조직되었으며 1933년 벽제관전적기념비가 건립되면서 벽제관은 더욱 주목받았다. 같은 해 일제는 벽제관을 ‘기념지’·‘유원지’·‘유람지’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녹화사업과 함께 도로와 교통 시설의 확충과 전등 가설 등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도 벽제관 앞으로 신축·이전하여 벽제관 일대가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일대에서 군사훈련도 실시되고 일황을 위한 관민 기념식이 거행되는 등 벽제관은 황국신민화 를 위한 선전장으로도 활용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 홍보장으로서 벽제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다. 각종 강연회·기념식·강습회·추도식 등이 개최되었으며, 군인들의 방문과 훈련도이어졌다. 건물도 중수되었고, 도로방의 완비와 함께 교량도 가설되었다. 그리고전시체제기임에도 하이킹 코스로 개발·홍보되어 관람객이 답지했다. 벽제관고적보존회의 명칭도 1940년대에 들어 벽제관전적보존회로 바뀌어 군국주의적 색채를더욱 짙게 나타냈다. 요컨대 벽제관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고적 조사 및 보존, 자신들의 성지 발굴및 관광지·유원지 조성, 황국신민화의 선전장 개발 등 각종 정책이 어우러져 각광을받은, 일제 식민통치정책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는 역사적 장소라고 하겠다.
- 광주대학교
- KCI
- 한국근현대사연구
저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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