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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상동청년학원 연구(1904~1913) A Study on Sangdong Youth School(1904-1913)
인문과학연구소
한규무
논문정보
Publisher
서강인문논총
Issue Date
2015-04-01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Number
42
Start Page
419
End Page
454
DOI
ISSN
1226-8178
Abstract
사회적 관심과 이목을 모으며 1904년 10월 15일 개원한 상동청년학원은 이후 각지에 설립된 ‘청년’ 교육기관의 효시가 되었고, 1907년 이후 민족교육이 더욱 강화되었다. 청년학원은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운영되었으나, 상동교회의 교육기관이 증가하고 일제의 탄압이 심화되면서 점차 상황이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청년학원에서는 다양한 강습소를 설치하여 국어․수학 및 각종 실용적 학문과 인문학 분야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청년학원의 원장은 이승만-유일선-현순-남궁억 등이 맡았으며, 특히 현순-남궁억이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다수의 민족운동가들이 교사로 참여했다. 학생들 중에도 국내외 민족운동에 참여한 인물이 여럿이었다. 청년학원과 신민회는 통설대로 밀접한 관계였지만 그같은 관계는 신민회 창립 당시가 아닌 그 이후에 형성되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전덕기는 일제의 병탄 이후에도 청년학원뿐 아니라 대성학교․오산학교의 운영에 관심을 갖고 그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병탄 이후 청년학원의 운영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전덕기와 청년학원 관계자의 노력과 사회각계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호전되지 못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선교사들의 방관과 전덕기의 투병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청년학원은 1913년 11월 19일 제7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원되었다. 이후 1920년대 청년학원 동창들이 재건이 계획했으나 무산되었고, 해방 이후 김진호 등이 다시 재건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비록 9년이란 짧은 기간 운영되었지만 청년학원은 한국 민족운동사와 민족교육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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