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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세기 서역구법승(西域求法僧) 원표(元表)의 재고찰
The Reflect of Ven. Wonpyo at Borimsa Temple in 8th Century Silla Dynasty
사단법인한국교수불자연합회
이희재
논문정보
- Publisher
- 한국교수불자연합학회지
- Issue Date
- 2013-12-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19
- Number
- 2
- Start Page
- 89
- End Page
- 108
- DOI
- ISSN
- 2092-6553
Abstract
원표가 「화엄경」을 구하기 위해 방문한 서역의 우전국은 오늘날 신강 위구르 지방에 있는 호탄(중국명 和田)이다. 이 지역에서 대승불교가 꽃을 피우고 「화엄경」이 완성된 것은 지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인도와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화엄경」의 경우, 60화엄과 80화엄이 모두 이곳 사람들의 번역에 의해 중국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구법여행의 대상지였던 것이다. 「송고승전」에는 원표가 ‘서역에 가서 불적에 예배했다.’라고 되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중국에서 ‘하늘을 날아 가버린’ 원표는 실은 신라로 귀국했던 것이다. 당나라의 유학승을 우대했던 신라는 그가 보림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원표가 경덕왕의 지원을 받았고, 당시 지방세력의 지원을 받은 것도 이런 화엄사상의 국가적 요소가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불교의 흐름이 선종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원표의 화엄사상은 조명되지 못한 채 묻힌 것이다. 최근의 원표연구에서는 그가 고구려의 유민으로 어린시절 입당했다거나, 그가 인도로 구법여행을 했다거나, 장흥의 보림사가 아닌 천관산에서 활동했다거나 하는 주장들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원표는 고구려의 유민이 아니라 신라중대 보림사 인근 출신이었기 때문에 보림사로 귀국할 수 있었으며, 구법여행의 목적은「화엄경」을 구하기 위해 우전국을 방문하고 화엄신앙의 내용을 보기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복건성의 지제산에 머물며 화엄수행을 하다가 신라로 귀국한 후 구산선문이 형성되기 전에 보림사를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펼쳤던 것이다. 보림사 선종의 맥은 화엄종인 원표에서 출발하지는 않지만 보림사의 실질적 창건주의 체증은 비문에 원표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천관산 일대에는 원표이전에 이미 화엄사상이 전개되었으며, 원표가 화엄종이기 때문에 선종이 보림사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선종의 맥을 강조하다 보니 원표는 창건주로서의 존재감을 잃었던 것이다.
- 광주대학교
- KCI
- 한국교수불자연합학회지
저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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