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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900년대 김구의 황해도 장련·문화·안악 이주와 계몽운동 A Study on Kim Gu’s Move to Jangryeon, Munhwa, and Anak and Enlightenment Movement in Hwanghae Province in the 1900s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규무
논문정보
Publisher
한국독립운동사연구
Issue Date
2013-08-01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Number
45
Start Page
57
End Page
104
DOI
https://doi.org/10.15799/kimos.2013..45.002
ISSN
1225-7028
Abstract
김구가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00년 12월(음력) 부친상 이후이며, 1903년 2월(음력) 禫祀 이후 기독교로 ‘개종’하고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오랜 친구인 우종서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같은 해 겨울 평양에서 열린 강습회 성격의 사경회에 참석하면서 교사로서의 자질을 닦았다. 그러나 해주에서는 김구의 교육활동을 후원할 만한 인물도 없었고, 기독교와 신교육에 대한 거부감도 컸다. 그러던 차에 오인형의 전폭적인 후원약속을 받고 그는 1904년 2월 장련으로 이주했다. 여기에는 1903경 알게 된 오순형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오인형의 사랑방에서 김구가 시작한 학교는 1905년 9월경 광진학교로 발전했다. 그는 이 학교와 장련공립학교에서 ‘보조교사’ 역할을 했다. 그런데 후원자였던 오인형이 사망하고 생활의 근거를 잃게 되자 그는 타지로의 이주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차에 우종서의 권유를 받아 문화의 서명의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시기는 1907년 9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서명의숙은 농촌에 위치한 데다 우씨들의 문중학교나 다름없었고, 마침 안악의 지인 김용제의 권유도 있어 안악으로 이주했다. 안악에는 지인도 여럿이었고, 안악이 황해도에서 가장 교육사업이 활발한 지역이었으며, 1906년 12월경 안악면학회가 설립된 점 등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시기는 1908년 1월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안악 양산학교는 그 설립시기가 분명치 않은데, 김구는 1908년 7월에 열린 제2회 하기사범강습회에서 강습생들을 단발시키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그는 같은 해 4월경 조직된 해서교육총회의 학무총감을 맡았다. 이로써 그는 특정 학교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황해도 일대를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신민회의 황해도 조직책까지 맡게 되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이처럼 1900년대 황해도 일대에서의 김구의 이주 및 계몽운동은 자신의 의사뿐 아니라 여러 가지 주변 환경에 영향 받은 바 적지 않았으며,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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