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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雲人 宋鴻의 계몽운동과 민족교육 Song Hong’s Enlightenment Movement and National Education during the Korean Empire and Japanese Rule
호남사학회
한규무
논문정보
Publisher
역사학연구
Issue Date
2013-08-01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Number
51
Start Page
101
End Page
122
DOI
ISSN
1975-2431
Abstract
이 논문은 송홍의 계몽운동과 민족교육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그는 송병선에게 수학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본・러시아 등 열강의 이권침탈이 거세진 1904~1905년 이를 저지하기 위한 상소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대한협동회에서도 활동했다. 1905년 중국시찰에 나선 그는 天津에서 『大公報』의 ‘劉主筆’로부터 들은 立憲制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귀국 후 그는 1905년 입헌제 연구를 위해 창립된 헌정연구회의 임원을 맡아 계몽운동을 벌였으며, 1908년에는 대한협회 남평지회에 참여했다. 계몽운동이 여의치 않자 그는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어 교육운동에 투신했다. 1909년 광주보통학교 교사가 된 그는 이후 광주농업학교・전남사범학교 등을 거쳐 1924년 광주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그의 담당과목은 조선어와 한문이었으나, 그는 틈틈이 학생들에게 조선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노력했다. 송홍은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사건으로 많은 학생들이 투옥되자 신병을 이유로 출근하지 않았으며, 학생들의 제1차 공판기일에 사직했다. 이는 광주학생운동 때문에 교사가 교단에서 물러난 흔치 않은 사례였다. 이후 1933년 『現代新進實用書簡文』을 간행한 것 외에는 그의 뚜렷한 행적이 보이지 않는다. 해방 이후 그는 다시 광주고보에 복직했으며, 광주의대에서도 한국사를 강의했다. 1947년 전남문화단체연맹의 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던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교단에서 물러났으며, 1949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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