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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920~1930년대 고학생갈돕회의 설립과 활동
A Study on the Foundation and Activities of Galdophoe for Self-Supporting Students in the 1920s and 1930s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규무
논문정보
- Publisher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Issue Date
- 2012-12-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Number
- 73
- Start Page
- 209
- End Page
- 250
- DOI
- ISSN
- 1226-9980
Abstract
갈돕회(Galdophoe)는 1920년 6월 21일 창립된 고학생 상조단체였다. 초대회장은 최현이었으며, 이상재가 총재를 맡았다. 그리고 설립에 관여한 인물 중에는 1919년 3ㆍ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했거나 1920년대 사회주의계열에서 활동한 인물도 여럿이었다. 사회적 이목을 끌면서 설립된 갈돕회는 각계각층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유사한 고학생 상조단체들이 설립되고, 1921년 『동아일보』에 게재한 광고가 문제되어 외부인사들의 신임을 잃었다. 또 1922~1923년 폭행사건과 유용사건이 일어나 시련을 겪으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 갈돕회의 임원ㆍ회원은 1925년 이전과 1926년 이후가 뚜렷이 구분되는데, 사회주의계열의 인물이 전자에는 다수지만 후자에는 전무하다. 1925년 총회 이후 갈돕회가 ‘좌경화’되었다는 연구도 있으나, 그같은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는 이와 달랐던 것 같다. 1920~1945년 갈돕회를 거쳐간 회원은 2,300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또 동경과 간도 및 국내 지방에서 ‘갈돕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갈돕회는 설립 초기 각계각층으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았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1921~1922년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개최하고 소인극을 공연했다. 그러나 1923년 이후에는 강연회와 소인극이 자취를 감췄다. 회원들은 학비와 식비를 벌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특히 갈돕만주가 유명하여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25년 회원 김성연의 참사 이후 이마저 중단되었다. 1925년 이전 갈돕회는 학생단체ㆍ상조단체이자 잡지를 발간하고 강연회ㆍ소인극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계몽단체의 역할도 했다. 1926년 이후 갈돕회는 상조단체로서의 활동만 유지되었다. 안재홍ㆍ이인 등의 민족운동가들의 후원도 있었나, 이들이 구금되면서 갈돕회는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었다가 해방 이후 1945년 12월 재건되었다.
- 광주대학교
- KCI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저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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