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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905년‘상동회의’와 을사조약 반대투쟁 Sangdong Meeting and a struggle against the Protectorate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Eulsa Treaty) in 1905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규무
논문정보
Publisher
한국독립운동사연구
Issue Date
2012-12-01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Number
43
Start Page
5
End Page
41
DOI
https://doi.org/10.15799/kimos.2012..43.001
ISSN
1225-7028
Abstract
이 논문은 1905년 11월 서울 상동감리교회에서 열린 ‘상동회의’ 및 을사조약 반대투쟁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1905년 11월 18일 을사조약 체결 직후 열린 ‘상동회의’에는 22명 이상이 참석하여 조약반대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는 전국 감리교회 엡윗청년회 대표들의 회의로 보기는 어려우며, 상동청년회 회원과 서북지역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민족운동세력의 집회였다. 여기에 육군무관학교 출신 기독교인들도 가담했다. ‘상동회의’ 참석자들은 을사조약 파기를 위해 복합상소와 가두연설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많은 군중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일경과 충돌을 빚어 구금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을사조약 반대투쟁으로는 가장 조직적·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상소문의 내용은 오늘날 한국측이 을사조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근거와 일맥상통한다. ‘상동회의’ 참석자 대부분은 이상의 반대투쟁은 중단하고 대신 계몽운동에 매진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기산도·이동녕·전덕기·정순만 등은 ‘을사오적’ 암살을 모의·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무위에 그쳤고, 이동녕·정순만은 국외로 망명했다. ‘상동회의’ 참석자들은 을사조약 직후는 물론 이후에도 여러 방면의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상동회의’는 1900년대 국내 민족운동계의 동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된다. 또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으므로, 이는 기독교 민족운동의 측면에서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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