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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922년 평화기념 동경박람회와 조선인시찰단
Tokyo Exhibition in Commemoration of Peace(1922) and the Inspection Parties of Joseon People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규무, 노기욱
논문정보
- Publisher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Issue Date
- 2010-12-01
- Keywords
- -
- Citation
- -
- Source
- -
- Journal Title
- -
- Volume
- Number
- 65
- Start Page
- 33
- End Page
- 72
- DOI
- ISSN
- 1226-9980
Abstract
이 논문은 1922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평화기념동경박람회에 대한 것이다. 3ㆍ1운동 이후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한 총독부에서는 일본의 발전상을 조선인들에게 과시하는 홍보ㆍ회유정책의 일환으로서 뿐 아니라 조선미朝鮮米의 판촉을 위한 기회로 이 박람회를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조선관朝鮮館 건축에 거금을 투여하는 한편 조선관 운영과 시찰단 조직을 위해 조선협찬회를 조직했다. 협찬회에서는 각도별로 할당하여 사업자금을 모금했으며, 총 222개 시찰단 5,187명 단원을 파송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때 단원으로 참여한 이들은 지방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식층’이자 총독부가 식민지배의 새로운 협력자로 양성하고자 했던 ‘중견인물’들이었다. 총독부에서는 이 박람회가 “품종개량된 조선미의 성과를 선전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여 박람회장 안팎에서 조선미를 홍보ㆍ판매했다. 또한 일본인들이 모피류ㆍ인삼류ㆍ미곡류 등을 판매하여 조선의 문화 및 산업의 발전상을 보여주기 보다는 조선의 일본인들의 판촉장소로 활용하는 데 더 주력한 듯 했다. 일제는 이 박람회를 그들의 식민통치에 적극 활용했다. 박람회 개막 때부터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는 상세한 보도가 연일 실렸고, 전국 각지에서 매일신보사 주최로 박람회의 영상을 담은 활동사진회가 열렸으며, 시찰단원 중에는 귀국하여 신문이나 잡지에 견문기를 연재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또 ‘환영회’ㆍ‘강연회’ 등의 형식을 빌어 단원으로 참가한 지역 관리ㆍ유지들이 주민들에게 소감을 밝히며 일본의 발달된 문물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박람회 내용이 고등보통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이처럼 평화박람회 조선인 시찰단은 일제의 정치ㆍ경제적 목적에서 조직되었으며, 중앙 및 지방의 행정기관이 총동원된 관제 사업이었다. 그리고 적지않은 조선인들이 단원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문물을 시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박람회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도쿄의 조선인들은 조선관의 내부가 부실하며 전시품도 대부분 조잡한 데다 조선인 인형과 조선가옥의 모형도 야만스럽게 느껴진다 하여 주최측에 항의했고, 조선인의 시찰단 조직과 박람회 관람을 만류하기도 했다. 이처럼 평화박람회는 조선인들의 민족적 감성을 자극하여 공분을 자아낸 박람회이기도 했다.
- 광주대학교
- KCI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저자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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