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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
호남사학회
논문정보
Publisher
역사학연구
Issue Date
2023-02-27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1
Number
89
Start Page
185
End Page
224
DOI
ISSN
19752431
Abstract
1927년 4월 전남인들의 열망으로 설립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는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와 함께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는 광주고등여학교에서의 1년 더부살이 후 신축 교사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교사들 대부분은 여전히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을 무시하는 태도도 여전하였다. 1928년 11월 광주여고보생 장매성이 광주여고보생들에게 모임 결성을 제한하였고, 6명이 찬성하였다. 장매성이 모임 결성은 제안한 것은 성진회를 조직하였던 장재성의 동생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고, 광주지역 한국인 중등학교 학생들의 연구모임 결성과 동맹휴교, 구체적인 조직체로의 발전을 향한 움직임에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당시 여고보생들이 겪고 있던 일제의 부실한 교육이었다. 1928년 7월 학생들을 무시하는 일본인 교사들의 갱질을 요구한 광주여고보생들의 「진정서」제출과 맹휴 시도는 일제의 식민교육에 저항하려면 학생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모임 결성으로 연결되었다. 1928년 11월 초에 결성된 광주여고보의 소녀회는 1929년 11월 30일 장매성이 체포된 후 일제에게 그 존재가 알려졌고, 1930년 1월 15일 소녀회원들이 체포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소녀회는 약 1년 2개월 동안 존속하며, 광주여고보에 모임을 확대하고 사회과학을 공부하였으며 1929년 11월부터 전개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소녀회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광주여고보의 많은 학생들이 소녀회를 알았고, 소녀회가 일제에게 체포된 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알게 되었으며, 소녀회원들을 적극 동정하고 함께 하고자 하였다. 일제가 소녀회원으로 파악하지 않은 이광춘이 백지동맹을 적극 권유하였고, 여고보의 모든 학생들이 이광춘의 백지동맹 참여 권유에 동의하였음이 명백한 증거이다. 소녀회원들을 포함하여 광주여고보생들은, 한?일 학생 충돌로 인해 부상당한 한국인 남학생들을 치료하고,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자 교내에서 독립가를 부르며 시위하였다. 또한 검거된 여고보생들과 함께 하고자 백지동맹을 결행하는 등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모두가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정학,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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