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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797년 동래부 용당포 표착 서양 선박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대응 The Responses of Joseon Korea and Japan to the Western Ships drifted at Yongdang Port in Dongnae-bu in 1797
한일관계사학회
정성일
논문정보
Publisher
한일관계사연구
Issue Date
2026-02-01
Keywords
-
Citation
-
Source
-
Journal Title
-
Volume
Number
91
Start Page
179
End Page
230
DOI
ISSN
1229-3687
Abstract
이 글에서는 1797년 동래부 용당포(龍塘浦)에 표착(漂着)한 서양 선박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래부 용당포에 표착한 선박은 영국 해군 장교 윌리엄 로버트 브로튼(William Robert Broughton)이 이끈 프린스 윌리암 헨리(Prince William Henry)라는 이름의 범선(帆船)이었다. 둘째, 영국 배의 표착 일자는 1797년 8월 24일(양력 10월 13일) 밤이었다. 이 배가 조선인에 의해 발견된 것은 8월 25일 아침이었다. 그리고 이 배가 부산에서 떠나간 것은 9월 2일이었다(양력 10월 21일). 셋째, 9월 2일 영국 배가 부산에서 떠나갔을 때, 왜관의 관수(館守)는 대마도로 쌀을 운반하던 소덕환(小德丸)을 보내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본국에 보고하였다. 9월 2일 동래부사는 사형(舍兄)을 왜관 안으로 들어가게 하여 왜관 내부를 살피게 했으며, 9월 5일 경상도 관찰사는 왜관의 외곽을 순시하였다. 넷째, 대마도에서는 왜관을 방어하고자 무사(武士) 20명과 무기(武器)를 왜관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다. 10월 2일(양력 11월 19일) 대마도에서 바다를 건넌 6척의 배와 함께 무사 9명이 10월 3일 오전 왜관에 도착하였다. 왜관에 파견되어 있었던 무사 9명을 태운 소덕환(小德丸)이 10월 7일 아침 닻을 띄우고 바다를 건너서 대마도로 돌아갔다. 이로써 윌리엄 로버트 브로튼의 〈프린스 윌리암 헨리호〉를 둘러싼 조선과 일본의 접촉은 일단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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