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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의약품은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커다란 기여를 해 왔으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사용되던 많은 무기의약품이 새로이 개발된 유기의약품으로 대체되어 왔다. 무기의약품은 그 적용 범위와 사용량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약전에는 100여 종의 무기의약품이 수재되어 있다. 무기물질은 생체의 기능과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이러한 기능조절을 돕는 무기물질들은 앞으로도 중요한 의약품으로 계속 사용될 것이며, 의약품의 전문가인 약사들은 이들의 구조, 작용기전 및 임상적용 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의료현장에서 난치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의 예후 예측이 점점 중요한 현실에 비추어, 약사들이 이러한 방사성의약품에 대해서 전문적 지식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사용되던 ‘무기 및 방사성의약품학’을 기초로 하여, 무기의약품을 부분적으로 정리하고 방사성의약품학 부분의 내용을 확대하여 재집필하였다.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의 특성, 측정기술, 생체에 미치는 영향, 의약학에의 응용 등을 기술하였고, 마지막 장에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주요 방사성의약품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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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0년전 서울대 법학박사학위론문 제1초고 중 나머지를 손질한 결실로, 동아시아 자연법론 중 天道와 人法의 관계를 중심으로 통찰한 法文史哲學(법인문학) 저서다. “사람이 하늘(자연)을 법 삼아야 한다(人法天)”는 기본 명제와 天命觀에서 출발해, 人法이 天道ㆍ天時에 어긋날 때 하늘의 경고 내지 천벌로 나타나는 천재지변(災異) 철학 및 ‘君主ㆍ民本론과 저항ㆍ혁명 사상’을 상론한다. 이어 道-法의 항상성과 변화성을 주제로 진리의 절대성과 상대성, 법적 안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역사철학 문헌으로 실증하고, 청말 변법개혁 주체인 沈家本과 梁啟超의 變法論을 비교ㆍ고찰한다. 끝으로 전통법문화에 궁극이상인 분쟁의 평화해결과 예방법철학을 개관한다. ‘역사란 스승!(史者, 師也!)’ 수천년 전통법의 역사대하를 반평생 외곬으로 탐사한 저자의 心得이다. 방대한 전통법의 심오한 정신지혜를 간명히 집대성한 저자 박사학위론문 3형제는, 杜甫 ‘贈花卿’에 “오직 천상에나 있을 노래, 인간이 몇이나 들어볼까?(此曲只應天上有, 人間能得幾回聞?)” 詩境처럼, 특출한 千載一遇 걸작이다. 33년 완전 채식, 3천회 등산, 學道一如로 절차탁마한 고귀하고 영롱한 寶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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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잉스의 중국에 대한 지식은 전통 교육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37년 일본군이 중국을 침공하자 중국 동부 안후이성(安徽省)의 외딴 산골짜기로 피난가야했던 위잉스는 그곳에서 고전적인 교육을 받았다. 20세기의 서구적인 교육 방식과는 달랐던 이 전통적인 한문 교육은 위잉스의 방법론의 출발점이다. 홍콩과 대만, 그리고 아이비 리그에서 경력을 쌓은 위잉스는 중국의 오랜 전통이 민주주의 발전의 방해물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위잉스는 중국 북부의 항구 도시인 톈진에서 1930년 1월 22일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중국 동북부 선양에서 대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중단해야 했고 나중에 베이징의 옌칭 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50년 홍콩(당시 영국 식민지)에 있는 아버지를 방문했다가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기차가 고장났을 때, 홍콩에서 남기로 결심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내 인생의 운명을 결정한 중요한 순간이었고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1955년 하버드대학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그는 미시간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예일 대학교, 홍콩 중문 대학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1987년부터 프린스톤 대학의 교수진에 합류했고 2001년 은퇴할 때까지 이 자리를 유지했다. 2006년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학자에게 수여하는 ‘클러지상’을 수상하며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2014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탕상’을 수상했다. 이 회고록은 2018년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출판된 책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위잉스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했는지를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는 10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꿈’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필요이상으로 강력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민족주의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민족주의는 침략을 받았을 때만 존재해야 합니다.”